[1927년] 경성방송국, 국내 첫 라디오방송 송출

"여기는 경성방송국입니다. JODK." 1927년 2월 16일 오후 1시,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방송이 첫 전파를 발사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현재의 덕수초등학교 자리였다. 호출부호는 JODK, 주파수는 690kHz, 방송기기는 영국 마르코니사 제품이었다.
방송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총 17시간이었지만 장비부족과 인력문제로 방송은 늘 불규칙했다. 개국초기의 방송언어는 한일 양국어 편성비율이 3 대 7이었다가 1933년 조선어 방송인 연희방송소가 개소된 뒤로 일본어 방송을 제1방송, 한국어 방송을 제2방송으로 하는 이중방송으로 진행했다.
1926년 11월 30일에 개국한 경성방송국은 한국인 직원이 3명 포함돼 있었는데 전설적 무용가 최승희의 오빠 최승일이 '프로듀서 1호'였고, 그의 부인 마현경이 '아나운서 1호'였다. 정규 라디오 방송은 미국, 영구, 프랑스,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6번째였지만 국권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의미없는 기록으로 남았다.
당시 라디오의 청취료는 월 2원으로 쌀 한 가마니 가격이 5원이었음을 생각하면 꽤 고가의 청취료였다. 수신기, 즉 라디오 역시 고가품으로 1~2명이 청취 가능한 수신이 약한 수신기는 10~15원, 가족용 수신기는 100원, 고급수신기는 4,000원을 호가했다.
청취를 위한 계약도 까다로워서 대문 밖에는 청취 허가장을 붙여야 했고 도청시에는 1,000원 이하의 벌금이나 1년 이하의 징역이 가해졌다. 때문에 라디오 청취 계약자는 개국 일주일 후에 1,440명(한국인 275명 포함)으로 점차 증가하긴 했지만 5년 뒤 1만 4,000여명일 정도로 계약자가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