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2월 15일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
- 피터 서덜랜드 GATT사무총장이 제네바에서 우루과이 라운드 최종의정서의 채택을 선포하고 있다.
1993년 12월 15일 오후5시 제네바. 세계각국의 무역장벽을 제거하기 위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7년여간의 난항끝에 1백17개 국가가 참가한 가운데 타결됐다. 회의장을 나선 브리튼 당시 EC(유럽공동체)무역담당 집행위원은 "오늘은 세계무역사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각국 대표들 대부분의 표정은 무거웠다.
1986년 우루과이 푼타 델 에스테에서 UR협상 출범을 선언한지 7년3개월이 흘렀고, 그 시간만큼 지친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역자유화라는 이름으로 시장개방을 강요하는 선진국에 맞서 어떻게 자국의 이익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1994년 4월 모로코의 마라케시에서 열린 각국간의 각료급 회의에서 최종협정문이 조인됨으로써 UR은 완전 타결되었다.
UR은 1947년 출범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제8차 협정이었다. 과거 7차례 협상과의 차이점은 동구권까지 시장경제로 편입된 상황에 맞춰 광범위한 의제를 다뤘다는 것이었다. 상품협상과 서비스협상을 양축으로 무려 15개 의제가 대상이었다. GATT 체제를 강화하는 반덩핌관세 등도 난제였지만, GATT체제 바깥에 있었던 농산물, 섬유류, 지적재산권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쌀을 포함한 285개 농산물의 수입개방을 합의하자 농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1992년부터 시작된 농민시위는 협상이 끝난 1994년 4월, `UR밀실협상 규탄 및 국회비준 저지를 위한 국민대회`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 11개 도시에서 열려 농민 3만명이 참가했을 정도였다.
UR가 완전 타결되면서 GATT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자리를 물려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GATT가 스위스 제네바에 작은 사무국을 두고 운영된 느슨한 `국제협정`이었던데 비해, 1995년 1월 1일 출범한 WTO는 제네바 본부에 수백명의 전문가를 상주시키고 무역분쟁을 조정하고 회원국들의 의무 위반을 감시하는 `국제공식기구`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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