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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국내 10대뉴스

  • 주가대폭락 항의시위 확산
    주가대폭락 항의시위 확산
    1990년 증시는 1년내내 계속된 주가폭락으로 투자자와 증권사 모두 시련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손실이 갈수록 늘어나자 투자자들의 항의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한 투자자는 자살까지 하는등 주가폭락에 따른 후유증이 컸다. 증권사도 활황때와는 달리 적자상태로 빠지자 투자자들과의 심각한 마찰을 빚어가며 담보부족계좌를 강제로 처분해야하는 등 위기를 맞았다. 예측불허인 페르시아만사태, 고금리 및 물가불안 그리고 경제회복불투명등으로 내년도 증시전망이 어려운 상태여서 한해를 넘기는 투자자들의 마음은 편치 못한 형편이다.
  • 울산현중-KBS노사분규
    울산현중-KBS노사분규
    1990년 4월에 있었던 울산 현대중공업노조의 파업과 KBS사원들의 제작거부사태는 대규모 경찰병력이 진압, 농성자들을 강제연행하는 최악의 국면까지 치달았다. 구속된 노조원들의 석방요구가 주요 파업이슈였던 현대중공업사태는 파업3일만에 경찰병력이 투입됐으나 울산의 현대계열사들이 연대파업을 벌이고 근로자51명이 공장내 골리앗크레인에서농성을 계속하는 바람에 파업 23일만에야 조업이 정상화됐다. 또 서기원신임사장의 퇴진문제로 빚어졌던 KBS사태 역시 경찰병력이 투입되는 극약처방까지 빚으면서 한달이상 파행방송이 계속됐다.
  • 3당통합-민자당 내분 파동
    3당통합-민자당 내분 파동
    1990년 1월 22일 구민정-민주-공화 3당이 통합을 선언, 민자당이 탄생했다. 민자당이 출범하면서 내건 기치는, 88년도 4.26총선으로 형성된 불안정한 정치구도를 해소하고, 중도민주세력을 대통합해 남북통일에 대비하겠다는 것. 그러나 이렇게 탄생한 '여야'는 이질적 정치세력간의 인위적인 연합구도속에서, 김영삼 대표최고위원 '가출'등 차기 당권및 대권과 관련된 내분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5월 9일 창당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진 김영삼 당시최고위원과 박철언 정무제1장관간의 대결, 내각제합의각서파문에 따른 김대표의 마산행 및 당무거부사태들이 그것. 이러한 내분은 정국전체를 뒤흔들었다.
  • 강력범기승에 '전쟁'선포
    강력범기승에 '전쟁'선포
    금년은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린해였다. 수십만원의 금품을 빼앗기위해 5살의 최서연양을 포함해 일가족 5명을 산채로 묻어 살해했던 잔혹한 사건에 이르러서는 온국민이 경악할 정도였다. 또 공중전화를 오래쓰는 것에 항의했다고 칼을 휘둘러 사람을 죽이는 등 사회도덕률의 해체를 우려하게끔 만드는 사건들까지도 등장했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노태우대통령은 1990년 10월 13일 범죄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정부의 범죄소탕작전으로 범죄발생건수는 상당히 줄었지만 세무사살인사건, 화성9번째살인사건등의 발생으로 치안불안에 대한 국민들의 체감도는 낮아지지 않았다.
  • 한소수교, 노대통령 방소
    한소수교, 노대통령 방소
    한소양국은 1990년 6월 4일 전격적인 샌프란시스코정상회담에 이어, 9월 30일 양국 외무장관간 수교서명, 12월 14일 노태우대통령 방소기간중 '모스크바선언'발표등으로 초고속관계개선 가도를 달렸다. 이같은 '외교사건'들은 우리나라의 방북정책과 소련의 아태지역진출희망등이 국제정세의 급변속에 맞아떨어져 이뤄진 것, 이로써 전세계적인 화해무드를 몰고온 소련의 신사고외교가 한반도에서도 적용이 가시화됐으며, 이는 남북긴장완화와 대화진정을 위해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그러나 일본 북한등 주변국들은 한소관계 급진전에 긴장, 상호 수교교섭에 나서는등 대책마련을 서두르게 됐다.
  • 새민방 서울방송 태영선정
    새민방 서울방송 태영선정
    새민방 서울방송이 1990년 11월 14일 정식 출범했다. 새 민방의 탄생은 정부가 공민영경쟁체제로 방송정책을 수정함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정부는 지난 6월 방송구조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국민감정을 감안, 새민방의 재벌참여배제원칙과 특정인의 민방주식 30%이상 소유금지등의 기준을 세웠다. 정부는 이 기준에 따라 민방참여를 신청한 60인중 (주)태영을 지배주주로 하는 31인의 민방주주가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태영의 민방주도와 관련, 재벌배후설, 청와대 관련설등의 혹이 터져나오면서 일대 파문이 있었다. 새민방은 91년 상반기 라디오방송을 내고, 하반기에 TV전파를 내보낼 계획이다.
  • 보안사 민간인사찰 파문
    보안사 민간인사찰 파문
    재학중의 운동권활동에 대한 조사를 받다 보안사에 파견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기록을 공개, 폭로해 충격을 주었다. 당시 윤이병이 공개한 자료는 개인별 목록표 1천3백장과 컴퓨터디스켓 30장으로, 이는 방대한 자료중 일부로 밝혀졌다. 더구나 이 자료에는 개인별 신상자료는 물론 은밀한 대화내용, 심지어 일부 인사의 집구조와 예상도주로까지 기록돼있어 보안사의 감시활동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광범위하고 세밀한 곳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사태로 국방장관, 보안사령관이 경질되고, 서빙고분실 폐쇄등 보안사개혁조치가 발표됐다.
  • 지자제 30년만에 부활 확정
    지자제 30년만에 부활 확정
    여야는 1990년 12월 11일 총무회담에서 지자제선거법협상을 힘겹게 타결, 정기국회에서 관련법안들을 통과시킴으로써 지자제를 30년만에 부활시켰다. 여야가 지자제에 합의한 배경속에는 노태우대통령 임기중 지자제실시라는 대국민 약속을 이행한다는 여권의 입장과 차기 대권획득에 모든걸 걸고 있는 야권의 대선전 지자제획득 전략이 합쳐졌기에 가능했다고 볼수있다. 이에따라 광역-기초 지방의회선거는 내년 3월쯤에,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장선거는 92년 상반기에 잇따라 실시돼 이른바 '풀뿌리 민주주의'정착을 위한 지방정치시대의 새로운 정치실험이 시작된다.
  • 총리회담등 남북교류 활발
    총리회담등 남북교류 활발
    1차서울회담(9월)을 비롯, 남북을 왕래하며 진행된 3차례에 걸친 남북고위급(총리)회담과 통일축구대회 통일음악회등의 잇따른 개최로 6.25이후 남북대화 및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해였다. 고위급회담은 그러나 북한측이 실질적인 남북관계개선보다 불가침선언 등 정치-군사문제에만 치중,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다. 다만 양측 총리를 대표로 한 회담이 계속 열린다는 사실자체(4차회담.91년2월 예정)가 '성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0년 10월초부터 시작, 평양-서울을 오가며 개최된 통일축구대회와 통일전통음악회는 처음으로 남북간 민간차원 교류의 길을 연 행사였다.
  • 65년만의 폭우...한강범람
    65년만의 폭우...한강범람
    1990년 9월 9일부터 11일까지 서울-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1백57명의 사망-실종자와 18만명의 이재민을 냈다. 재산피해도 4천2백29억원에 이르렀다. 12일 새벽에는 경기도 고양군 지도읍 행주대교 아래 한강둑이 무너져 고양군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11일 오후 6시에는 한강수위가 위험수위인 10.5m를 돌파 11.27m를 기록해 1925년 을축년대 홍수때의 12.16m에 버금갔다. 수원지방에서는 시간당 강우량 53.2mm, 1일 강우량 2백76.3mm를 기록해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비가 내렸고 경인선등 6개 철도가 일시 끊겼다. 홍수기간 군은 일산둑 복구를 마무리 짓는데 큰 역할을 했다.
  • 1990년 해외 10대뉴스

  • '철의 여인' 대처 총리사임
    '철의 여인' 대처 총리사임
    지난 1979년이래 3차례나 총리직을 연임하면서 11년 6개월동안 장기집권해 온 영국의 마거릿 대처총리가 1990년 11월 22일에 사임했다. 대처는 사임 이틀 전에 치러진 보수당당수선거 1차투표에서 이기지 못하자 2차투표를 포기하고 스스로 물러났다. 비록 경제침체와 주민세도입, EC통합에의 소극적 태도 등으로 인기가 하락, 도중하차하긴 했지만 강력한 지도력으로 영국병을 치유한 그의 업적은 영국국민들의 머리속에 오래 기억될 것이다. 대처의 후임으로는 역시 보수당출신인 메이저재무장관이 임명되었다. 메이저총리는 대EC(유러공동체)관계에서 영국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지 주목된다.
  • 북한-일, 조기수교 합의
    북한-일, 조기수교 합의
    북한과 일본은 1990년 9월 27일 김일성과 가네마루신(금환신)전 일본부총리간의 회담을 통해 조기수교를 위한 협상을 시작키로 원칙합의하고, 이틀 뒤인 28일 북한 노동당과 일본 자민-사회당간의 3당 공동성명 형식으로 이를 공식발표했다. 일-북한 양측은 이후 북경에서 세차례 가진 예비수교회담에서 내년 1월하순부터 평양 동경 북경에서 국교정상화를 위한 본회담을 개최할 것에 합의했다. 북한측은 전후 45년간에 대해서도 요구하고 있어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 주목된다. 일-북한간의 수교협상이 완전타결까지는 앞으로 2년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
  • 소독재 청산과 외무사임
    소독재 청산과 외무사임
    소련 공산당은 1990년 2월 5일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28차 전체회의에서 공산당의 지도적역학과 권력독점을 규정한 헌법 제6조를 폐기했다. 소련공산당의 이러한 결정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후 72년간 지속돼온 공산당일당독재를 청산하는 것이다. 소련공산당은 이와 함께 다당제를 수용하는 등 일대 체제변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12월 20일 개최된 인민대표회의에서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 충격을 주었다. 동서화해를 추구해온 그는 '독재가 다가오고 있다'며 보수강경세력의 득세를 경고해 소련의 개혁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에 놓여있음을 보여줬다.
  • 페만전운, 석유파동 위기
    페만전운, 석유파동 위기
    이라크는 1990년 8월 2일 전격적으로 쿠웨이트를 무력침공, 쿠웨이트정부를 전복시킨뒤 양국 합병을 선언했다. 미국은 즉각 군대를 페르시아만에 파병한데 이어 지금까지 미군 25만명을 포함, 40만명의 다국적군을 페르시아만 일대에 배치했다. 서방축은 유엔에서 일련의 대이라크결의안을 통과시킨 뒤 경제봉쇄를 실행중에 있다. 유엔은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승인결의안을 통과시켰으며 미국은 이를 배경으로 내년 1월 15일을 이라크의 철수 최종 시한으로 설정해놓고 있다. 쿠웨이트 사태로 유가도 급등, 세계는 제3차 석유위기를 맞게될 상황에 놓여있다.
  • 냉전마감 '파리헌장' 채택
    냉전마감 '파리헌장' 채택
    미국 소련들 전유럽안보협력회의(CSCE)회원 34개국 정상들은 1990년 11월 21일 파리회담에서 대결과 분열의 시대를 종식하고 모든 유럽국가들이 민주선거와 경제적 자유, 인권보장 등의 새로은 시대를 여는 파리헌장에 조인했다. 총 19페이지에 3개장으로 구성된 이 파리헌장을 '민주주의와 평화단결을 예고하는 새로운 시대가 유럽에 펼쳐지고 있다'고 전제, 유럽의 안보와 협력 인권 등에 대한 전반적인 지침을 명시하고 CSCE의 안정 발전을 위해 유럽내에 CSCE가 앞으로 냉전이후의 새로운 유럽 집단 안전보장체제로 자리잡게 될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 파키스탄총리 부토 실각
    파키스탄총리 부토 실각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총리가 1990년 8월 6일 전격 해임됐다, 굴랑 이샤크 칸 파키스탄대통령은 이날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부정부패와 권력남용, 족벌주의 등을 이유로 부토총리 및 내각을 해임하고 의회를 해산하는 한편 새로운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난 88년 12월 35세의 나이로 회교국가의 첫 여성총리가 됐던 부토는 집권 20개월만에 군부압력에 의한 준쿠데타로 권좌에서 밀려났다. 10월 24일 실시된 총선에서 부토 자신은 당선되었으나 그가 이끌던 인민당은 예상과는 달리 참페함으로써 재집권에 실패했고 이로써 파키스탄의 민주화는 또 한번 벽에 부딪혔다.
  • 이란 지진으로 5만여명 사망
    이란 지진으로 5만여명 사망
    1990년 6월 21일 자정, 이란 북서부 카스치해 인접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5만여명의 사망자와 20여만명의 부상자, 50여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리히터 지진계로 7.3을 기록한 이 대지진은 1백30여개 도시와 마을을 완전히 폐허화시켰으며 수일동안 3백60여 차례의 여진이 계속돼 주민들이 공포에 떨었다. 1979년 회교혁명 이후 폐쇄적인 자세를 보였던 이란정부도 어쩔 수 없이 서방측에 긴급원조를 요청했으며 세계 각국은 신속하게 구호의 온정을 전달했다. 이라크와의 8년전쟁에 이은 이 지진참사는 이란을 덮친 또 하나의 비극이다.
  • UR협상 진통... 1월로 연기
    UR협상 진통... 1월로 연기
    새로운 국제자유무역질서를 마련키 위한 우루과이라운드 무역협상 최종각료회의가 1990년 12월 3일부터 닷새동안 브뤼셀에서 열렸으나 결국 일괄타결에 이르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GATT(관세무역일반협정)산하 1백7개국 대표들이 모여 사상최대규모로 열린 이번 무역협상은 농산물부문의 협상을 둘러싸고 미, EC, 제3세계국가들의 입장이 날카롭게 맞서 실리를 추구하는 국제사회의 냉혹함을 실감케 했다. 현재 정확한 협상재개일자마저 합의하지 못한데다 각 국이 나름의 입장을 고수할 기미를 보이고 있어 협상은 심각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 바웬사, 파대통령에 당선
    바웬사, 파대통령에 당선
    반공산주의 투쟁의 기수로 폴란드 정치민주화에 헌신해온 자유노조 지도자 레흐 바웬사(47)가 1990년 12월 9일 실시된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바웬사는 이제 서구식 시장경제를 정착시키고, 정치 자유화를 가속화하기 위해 폴란드 개혁의 범위와 속도를 재조정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 독일 10월 3일 통일 성취
    독일 10월 3일 통일 성취
    1945년 2차대전에서의 패배로 인한 동서로 나뉘었던 독일이 마침내 하나로 통일됐다. 서독이 10월3일 오전0시를 기해 동독을 흡수통합하는 형식으로 독일연방공화국이 새롭게 태어났다. 미-영-불-소등 2차대전 전승4개국은 이 날짜로 베를린을 포함한 독일에 대한 모든 권리를 공식포기, 기존의 관할권을 독일에 이양했다. 통일을 주도한 헬무트 콜 서독총리는 12월2일 실시된 전독총선에서 승리, 초대 독일총리가 됐다. 독일통일은 단순히 게르만 민족의 통일차원을 넘어서 유럽내 독일의 위상은 물론, 기존의 국제질서에도 엄청난 변혁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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