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10대뉴스
  • 해외 10대뉴스

1983년 국내 10대뉴스

  • KAL여객기 피격
    KAL여객기 피격
    1982년 9월 1일 오전 3시26분쯤 대한항공 007편 747점보여객기가 사할린부근 상공에서 소련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추락, 승무원 29명과 승객 2백40명 등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몰사했다. KAL기는 뉴욕을 출발, 앵커리지를 거쳐 서울로 비행중 항로를 이탈, 소련 영공으로 들어갔다가 격추됐다. 레이건 미대통령이 소련 여객기의 미국 운항금지등 보복조치를 발표, 미-소관계가 극히 악화되고 세계 각국도 소련의 만행을 규탄, 소련기의 운항을 규제하는데 동조했다. 유엔안보리에서는 한국등 서방측이 제출한 대소규탄결의안이 소련의 거부권행사로 부결됐으나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민간항공기구 특별이사회는 압도적 다수로 규탄안을 채택했다
  • 중국 민항기 피랍
    중국 민항기 피랍
    1982년 5월 5일 승무원과 승객 1백5명을 태운 중국민항총국소속 트라이던트 여객기 1대가 瀋陽을 떠나 상해로 향하던중 권총으로 무장한 중국인 승객 6명에게 납치돼 춘천부근 미군기지에 불시착했다. 중국측은 한국과의 직접교섭을 제의, 沈圖민항총국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특별기편으로 입국, 피랍기체및 승객의 송환에 합의했다. 납치자 6명은 검찰에 의해 우리법원에 구속 기소됐다.
  • 대형 금융부정사건
    대형 금융부정사건
    상은 혜화동지점 김동겸 대리가 사채예금주들의 돈 1천66억원을 명성그룹 김철호회장에게 제공했음이 밝혀졌다. 김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윤자중 전 교통부장관을 포함, 21명이 구속됐다. 또 조흥은 중앙지점직원들이 영동개발진흥에 1천19억원의 어음부정보증을 해주어 영동의 이복례 회장 부자와 이헌승 조흥은행장등 29명이 구속됐다. 대구의 광명그룹도 5백67억원의 은행빚을 지고 도산했다.
  • 대도 조세형 탈주
    대도 조세형 탈주
    '대도'라는 별명을 가진 상습절도범 조세형(38)이 1983년 4월 14일 법원구내 구치감에서 탈주했다가 5일만인 19일 붙잡혔다. 조는 무기징역과 보호감호 10년의 구형에 충격을 받고 구치감의 환풍기를 뜯고 도주했다가 서울 장충동 민가에서 시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의 총을 맞고 검거됐다. 조는 김준성 전부총리를 비롯, 국회의원, 부유층등 유명인사집만을 털어온 기업형절도로 11번의 옥살이를 했다.
  • 이산가족찾기
    이산가족찾기
    1983년 6월 30일 밤 10시15분. KBS TV가 기획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생방송은 전국을 오열로 출렁이게 했다. KBS청사와 여의도광장은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벽보로 가득찼고, '만남의 광장'에는 연일 인파가 몰렸다. 4개월반동안 접수된 신청건수는 10만9백52건, 이중 5만3천5백36건이 방송되어 1만1백89가족이 뜨거운 해후를 했다. 4백53시간45분이란 단일주제생방송기록을 남겼고, 세계의 이목도 집중시켰다.
  • 나까소네 일본 수상 방한
    나까소네 일본 수상 방한
    나까소네 일본 수상이 일본수상으로는 처음으로 1983년 1월 11일부터 12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방한. 전두환대통령과 2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현안이었던 한-일경협을 40억달러선(ODA 18억 5천만달러, 뱅크론 3억5천만달러, 수출입 은행차관 21억5천만달러)으로 타결 지었다. 나까소네수상의 방한은 한-일간의 새로운 시대를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아웅산 암살폭발사건
    아웅산 암살폭발사건
    전두환 대통령이 서남아순방의 일환으로 1982년 10월 9일 버마를 방문했을때 북괴군 특수요원이 성지인 아웅산묘소에 폭탄을 미리 장치, 참배를 위해 전대통령을 기다리던 서상준 부총리를 비롯, 이범석 외무, 김동휘 상공, 서상철 동자부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등 17명의 공식-비공식수행원이 순직했다. 순직 17위에 대한 장례는 국민장으로 엄수됐다. 이사건의 범인들인 북괴군정찰국 특공부대소속 소좌 진모와 상위 강민철은 사건발생 한달보름뒤인 지난 11월22일부터 버마특별법정에서 재판을 받아 지난 12월 9일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코스타리카, 코모로, 서사모아등 3국이 대북괴 단교조치를 취했다.
  • 특별대사면
    특별대사면
    1983년 두 차례의 대사면 조치가 취해졌다. 8월12일, 정부는 학원소요 관련자들과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김대중 사건 및 광주사태 등에 관련된 공안사범, 일반 형사범 등 모두 1천9백44명에게 특별사면, 특별감형, 가석방, 형집행정지 및 특별복권한다고 발표했다. 이에따라 부산문화원사건과 관련된 최기식 신부 등 3명, 남민전관련 6명 등 51명이 형집행정지로, 구속학생 등 77명이 잔형면제로, 기타 6명이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또 김대중사건과 관련된 이택돈, 김녹영 의원과 유인호, 송건호, 이호철, 한승헌, 홍남순씨 등은 복권됐다. 12월23일에는 학원소요와 관련된 학생사범 ,공안사범과 일반형사범 등 모두 1천6백23명의 형확정자에게 특별사면, 가석방, 형집행정지 등의 조치를 취했다. 또, 이미 석방은 됐지만 공민권이 상실됐던 1백42명도 특별복권됐다. 이번 조치로 학원소요 관련자 36명이 특별사면으로, 95명은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으며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남민전사건, 부림사건 등에 관련된 공안사범 32명은 형집행정지로, 9명은 가석방으로 석방됐다.
  • 북한 이웅평 귀순
    북한 이웅평 귀순
    북한 공군의 이웅평(29)대위가 1983년 2월 25일 미그19기를 몰고 귀순했다. 이용사는 로키트사격훈련차 개천비행장을 이륙한 후 편대를 이탈, 우리 공군기의 유도로 서울남쪽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또 5월 7일에는 북괴군 제13사단 민경대소속 신중철(36)대위가 휴전선을 넘어 귀순했다. 북괴의 무장간첩 2명이 12월 3일 밤 부산 다대포해안으로 침투하려다 생포되고 간첩선 1척이 격침되는 사건도 있었다.
  • 레이건 미대통령 방한
    레이건 미대통령 방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대통령이 1983년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 전두환 대통령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국회에서 연설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방한기간중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최전방의 미군기지를 방문, 남북대결 현장을 목격했고 한-미공동성명을 통해 한국의 안보가 미국의 이익에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 1983년 해외 10대뉴스

  • 아웅산 암살폭발사건
    아웅산 암살폭발사건
    전두환 대통령이 서남아순방의 일환으로 1983년 10월 9일 버마를 방문했을때 북괴군 특수요원이 성지인 아웅산묘소에 폭탄을 미리 장치, 참배를 위해 전대통령을 기다리던 서상준 부총리를 비롯, 이범석 외무, 김동휘 상공, 서상철 동자부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등 17명의 공식-비공식수행원이 순직했다. 순직 17위에 대한 장례는 국민장으로 엄수됐다. 이사건의 범인들인 북괴군정찰국 특공부대소속 소좌 진모와 상위 강민철은 사건발생 한달보름뒤인 지난 11월 22일부터 버마특별법정에서 재판을 받아 지난 12월 9일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코스타리카, 코모로, 서사모아등 3국이 대북괴 단교조치를 취했다.
  • 안드로포프 장기유고
    안드로포프 장기유고
    소련공산당 서기장겸 최고회의 간부회의장 유리안드로포프가 8월 18일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사망설, 중병설, 피격설등 온갖 소문과 추측이 난무했다. 소련당국은 감기를 앓고 있는 안드로포프가 1백13일만에 집무를 재개했다고 밝혔고, 슐츠 미국무장관도 이를 확인했으나 지난 26일 열린 공산당중앙위에도 그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역시 갖가지 추측을 자아냈다.
  • 미-소 핵협상 결렬
    미-소 핵협상 결렬
    미국은 지난11월 중거리 핵미사일 크루즈와 퍼싱II의 1차분을 영국과 서독에 각각 배치, 마침내 미제미사일의 서구배치를 시작했다. 소련은 이에 반발, 유럽중거리 핵미사일협상(INF)과 전략핵무기감축협상(START)을 중단시켰다. 미-소간의 핵경쟁을 제어하는 모든 고삐가 풀림에 따라 핵전의 위험성이 어느때보다 높아졌다. 초강대국의 핵경쟁과 관련, 전서구에는 대규모 반핵시위가 그치지 않았다.
  • OPEC 유가 인하
    OPEC 유가 인하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1983년 3월 장기 12일간이나 끈 런던총회에서 배럴당 기준 유가를 34달러에서 29달러로 15% 인하하는데 합의, 저유가시대의 막을 올렸다. 23년 OPEC사상 처음으로 단행된 이 유가 인하는 수년간 침체에서 헤매던 세계경제를 회복세로 접어들게 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유가 및 산유쿼터조정문제로 회원국간에 이견이 있음에도 불구, 84년말까지는 이 유가가 유지될 것 같다.
  • 아키노 암살사건
    아키노 암살사건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전 상원의원이 민주화를 촉진하기 위해 망명생활을 끝내고, 1983년 8월 21일 귀국하다가 마닐라공항에서 암살당했다. 이 사건으로 연일 격렬한 반정시위가 일어나 필리핀전역이 초긴장상태에 빠졌으며 마르코스 정권은 집권 18년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정부는 범인의 신원을 청부살인자인 롤란도 갈만으로 밝혔으나, 야당 측은 아키노를 호송한 보안군인이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 미, 그레나다침공
    미, 그레나다침공
    미국은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그레나다에서 좌익쿠데타가 발생, 비숍수상이 처형되는등 政情이 극도로 혼미해지자 '동카리브해 국가기구(OECS)의 요청으로' 1983년 10월 25일 1천9백명의 육군특공대와 해병대를 파견, 이나라를 완전 장악했다. 미국은 그레나다침공으로 카리브해의 「붉은 물결」을 용납치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었으나 영, 불등 우방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 베이루트 폭탄 테러
    베이루트 폭탄 테러
    미국과 프랑스의 레바논 개입에 불만을 품은 테러분자가 1983년 10월 23일 폭탄적재 트럭을 몰고 베이루트주둔 미해병대와 프랑스군사령부 건물로 돌진, 폭발하여 모두 3백26명이 사망했다. 테러분자들은 그후에도 쿠웨이트 등에서 폭탄테러를 감행했으며 미국과 프랑스는 보복조처로 회교도거점과 시리아기지를 폭격했다. 테러행위와 PLO의 내분, 그로인한 아라파트의 레바논 출국등으로 레바논사태는 또다시 혼미에 빠졌다.
  • 바웬사, 평화상 수상
    바웬사, 평화상 수상
    1983년 6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두번째 조국 폴란드 방문후 끈질기게 나돌았던 폴란드 계엄령해제가 19개월만에 단행되었다. 그러나 겉만 정상화됐을뿐 당국의 대국민통제는 계속됐다. 이런 상황 속에 10월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는 83년도 평화상 수상자로 불법화된 전 자유노조지도자 레흐 바웬사를 선정, 꺼져가는 폴란드인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지에 다시 불을 붙였다.
  • KAL여객기 피격
    KAL여객기 피격
    1983년 9월 1일 오전 3시26분쯤 대한항공 007편 747점보여객기가 사할린부근 상공에서 소련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추락, 승무원 29명과 승객 2백40명 등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몰사했다. KAL기는 뉴욕을 출발, 앵커리지를 거쳐 서울로 비행중 항로를 이탈, 소련 영공으로 들어갔다가 격추됐다. 레이건 미대통령이 소련 여객기의 미국 운항금지등 보복조치를 발표, 미-소관계가 극히 악화되고 세계 각국도 소련의 만행을 규탄, 소련기의 운항을 규제하는데 동조했다. 유엔안보리에서는 한국등 서방측이 제출한 대소규탄결의안이 소련의 거부권행사로 부결됐으나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민간항공기구 특별이사회는 압도적 다수로 규탄안을 채택했다.
  • 일본 자민당 총선 패배
    일본 자민당 총선 패배
    록히드수뢰사건으로 기소되었던 다나까 가꾸에이(田中角榮)전 일본수상이 1983년 10월 12일 징역 4년, 추징금 5억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다나까의 유죄판결은 자민당은 물론 일본정계에 큰 파문을 던졌으며 나까소네 수상은 자민당의 실추된 이미지를 쇄신키위해 중의원을 해산, 12월 18일 총선을 실시했다. 자민당은 이선거에서 대패했으나, 무소속 및 신자유클럽의원들을 영입,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 제2차 나까소네 내각을 발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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