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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10대뉴스

1982년 국내 10대뉴스

  • 실명거래제 파문
    실명거래제 파문
    '7.3금융혁명' 으로 불리었던 금융실명거래제방안이 끝내 미완성의 금융혁명으로 끝났다. 지하경제를 지상으로 끌어올려 정의로운 경제사회를 이뤄보겠다는 행정부의 실명제는 정치권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오는 85년말까지 유보' 라는 시한부 사장의 운명을 겪게 됐다. 86년 1월이후 대통령령에 의해 실명제는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어 있으나, 그때 가서 여건이 또 어떻게 변할지몰라 실명제실시는 불투명하다.
  • 부산미문화원 방화
    부산미문화원 방화
    1982년 3월 18일 부산시 부산미국문화원에서 방화사건이 발생, 1층 도서실에서 공부하던 장덕술군(23.동아대2년) 이 사망하고 3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사건 12일만에 일당 중 4명이 검거됐고 주범 문부식은 3월 31일 천주교원주교육원에서 자수했다. 이 사건은 원주교육원에 은신중이던 김현장의 배후조종에 의한 것으로 밝혀져 김과 최기식 신부가 구속됐고, 곧이어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성명서 파동으로 이어졌다.
  • 전두환 대통령 아-가순방
    전두환 대통령 아-가순방
    전두환 대통령은 1982년 8월 16일부터 31일까지 케냐, 나이지리아, 가봉, 세네갈 등 아프리카 4개국과 캐나다를 공식 방문했다.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인 이번 아프리카 및 캐나다방문에서 전대통령은 각국 수뇌들과의 회담을 통해 국제정치 및 외교에서의 상호지원, 통상, 자본, 기술인력, 자원 등에 걸친 광범위한 남남협력의 토대를 다졌으며 방문성과를 구체화하기 위한 실무진의 교섭이 계속됐다.
  • 윤노파 박양사건 무죄
    윤노파 박양사건 무죄
    윤경화씨 피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구속됐던 고숙종씨(47)가 1-2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고 3백 4일만인 6월 17일 풀려난데 이어, 11월 30일에는 여대생 박상은양 피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던 정재읍군(21)마저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3백 9일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두 사건 모두 형사재판에 있어서 증거 우선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평가됐다.
  • 이-장부부 어음사기
    이-장부부 어음사기
    '건국이래 최대사건'으로 불릴만큼 이철희-장영자부부 어음사기사건은 규모나 여파가 엄청났다. 유통어음합계 7천1백11억원. 이로인해 혼란해진 경제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금융혁명' 으로 일컬어지는 6.28조치가 단행됐고, 실명제파동으로 이어졌다. 여당의 사무총장이 물러나고 법무장관이 두 번이나 바뀌는 등 정치적 회오리도 몰고왔다. 이-장부부는 1-2심에서 징역15년을 선고받았다.
  • 김대중석방 도미치료
    김대중석방 도미치료
    정부는 1982년 12월 16일 국가보안법 및 계엄법 등의 위반으로 형이 확정돼 복역중이던 김대중씨를 병원으로 이송 치료받도록 허용하고, 본인이 원한다면 도미치료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씨는 정부의 형집행정치결정에 따라 23일 가족과 함께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이어 24일에는 내란음모사건관련자, 광주사태관련자 등 제5공화국출범 이전의 사건관련자를 형집행정지로 석방했다.
  • 일본 교과서 왜곡 파동
    일본 교과서 왜곡 파동
    일본검정교과서가 사실을 왜곡, 한국침략을 '진출' 등으로 기술함으로써 7월말부터 교과서파동이 일어났다. 한국민들은 곧 대 일규탄대열에 나섰고 우리정부도 시정을 촉구하는 비망록을 전달, 일본정부는 11월말 '국제관계배려' 라는 새검정기준을 추가함으로써 파동은 일단락됐다. 이를 계기로 독립기념관건립이 추진돼 12월까지 3백30여억원의 성금이 모금됐고, 건립지는 충남 천원군 목천면으로 결정됐다.
  • 통금해제-교복자율화
    통금해제-교복자율화
    정부는 1982년 1월 5일 밤을 기해 일부 전방 접전지역 및 후방해안지역 (53개군 2백92개 읍-면) 을 제외한 전국의 야간통행금지조치를 해제했다. 이에 따라 인적이 끊겼던 심야의 거리가 활기에 넘치게 됐고 야간 풍속도도 달라졌다. 이와 함께 정부는 중-고교생의 머리모양을 새학기부터 자율화시키는 한편, 교복도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83년도부터 자유복장으로 바꾸었다.
  • 의령 우순경의 난동
    의령 우순경의 난동
    1982년 4월 26일 밤 9시 30분쯤 경남 의령경찰서 궁유지서 우범곤순경(27)이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소총 2정, 실탄 1백 29발, 수류탄6발을 들고나와 6시간동안 궁유면내 4개마을을 쏘다니며 무차별 난사, 주민 56명을 죽이는 가공할만한 범행을 저질렀다. 우순경은 내연의 처와 결혼문제로 다툰 후 술을 마시고 범행했다. 서정화 내무부장관이 물러나고 당시 근무지를 이탈했던 의령서장 등 3명의 경찰관과 방위병 3명이 구속됐다.
  • 김득구 선수의 사망
    김득구 선수의 사망
    김득구선수(23)는 1982년 11월 14일 미국의 라스베이가스 시리스팰리스호텔 특설링에서 벌어진 프로복싱 WBA(세계권투협회) 라이트급 타이틀매치에서 챔피언인 미국의 레이 붐붐 맨시니(21)에게 14회 KO패, 의식을 잃고 데저트스프링스병원에서 긴급뇌수술을 받았다. 김선수는 수술 후 5일간의 처절한 생존투쟁과 갖가지의 의학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입원한지 99시간15분만인 18일 오전 11시(한국시각) 사망했다.
  • 1982년 해외 10대뉴스

  • 波 자유노조 해제
    波 자유노조 해제
    폴란드의회가 1982년 10월 8일 자유노조불법화법안을 의결함에 따라 폴란드자유노조 '솔리대리티'가 해체되었다. 이로써 동구공산권 최초의 민간노조인 자유노조는 80년 8월 창설이후 2년여만에 불법단체화, 지하로 잠적했다. 그러나 야루젤스키 정권은 일종의 화해제스처로 81년 12월 13일 계엄선포와 함께 체포된 자유노조지도자 바웬사를 연금 11개월만인 지난 11월 14일 석방하고 계엄령도 이달 말일을 기해 '정지' 시켰다.
  • 팔레스타인난민 학살
    팔레스타인난민 학살
    1982년 6월 6일 이스라엘군은 남부 레바논의 PLO게릴라 소탕을 구실로 레바논을 전면침공했다. 90일간에 걸친 이스라엘군의 대공세로 PLO게릴라들은 남부 레바논과 베이루트에서 국외로 철수했다. PLO가 철수한 후 9월 17일 사브라와 샤틸라 두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레바논의 기독교민병대가 난입, 6백여명의 난민을 무차별 학살했다. 이스라엘 베긴 정부는 국내외의 많은 비난을 받았다.
  • 나까소네내각 출범
    나까소네내각 출범
    재선의 전망이 확실하다던 스즈끼 수상은 1982년 10월 12일 돌연 사임을 발표, 일본정계를 놀라게 했다. '和의 정치' 와 '拳黨체제' 를 내세워 사임한 스즈끼수상의 후임으로 나까소네행정관리청 장관이 자민당당원들의 예비선거에 의해 총재로 선출되어 11월 26일 戰後 제16대총리로 집권했다. 나까소네 수상은 평소 헌법개정, 자주국방 등을 주창해왔던 만큼 그가 어떻게 일본을 이끌어나갈지 주목되고 있다.
  • 군축-미사일 논쟁
    군축-미사일 논쟁
    미국과 소련은 1982년 6월 29일 제네바에서 사상 최대규모의 핵무기감축을 토의할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회담(START)을 개막했다. 이와 별도로 미국은 MX미사일의 배치와 퍼싱2및 크루즈미사일의 서구배치계획을 강행할 방침을 재천명했고 소련은 이에 대해 미국이 계획을 취소하면 SS20등 중거리미사일 수백기를 감축할 용의가 있으나 강행하면 소련도 그에 상응하는 핵무기로 맞서겠다고 회유와 협박으로 나왔다.
  • 蘇 안드로포프 집권
    蘇 안드로포프 집권
    18년간 소련을 통치한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겸 최고회의 간부회의장이 1982년 11월 10일 7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1월 12일 前소련비밀경찰(KGB) 총책 유리 안드로포프를 전격적으로 당서기장에 선출했다. 안드로포프체제는 국내경제의 활성화와 아프간과 폴란드문제, 중-소국경문제, 군축등 많은 난제를 안고있다.
  • 중국-소련 화해무드
    중국-소련 화해무드
    지난 56년 분쟁을 시발로 불편한 관계를 계속해온 두 공산대국 소련과 중국이 10월 5일 북경에서 관계정상화를 위한 예비접촉을 벌였다. 이같은 중-소의 접촉은 이를 두 나라가 국제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영향때문에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안드로포프 소련공산당서기장은 소련의 최우선 과제가 중-소화해라고 밝히고 있어 내년 모스크바와 북경에서 번갈아 열릴 중-소 화해회담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포클랜드 전쟁
    포클랜드 전쟁
    1백50년동안 영국과 아르헨티나간에 분쟁의 대상이 되어온 남대서양의 포클랜드를 아르헨티나가 1982년 4월 2일 전격 점령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은 같은 서방진영간의 대립이라는 특징속에 쌍방 많은 피해를 낸 채 6월 14일 아르헨티나가 항복함으로써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영국을 지원, 남미에서의 신뢰도에 금이 갔으며, 아르헨티나의 갈티에리 군사정부도 패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 스페인에 좌파정권
    스페인에 좌파정권
    1982년 10월 28일에 실시된 스페인 총선에서 펠리페 곤살레스(40)가 이끄는 사회노동당이 압승, 스페인 최초의 좌파정권이 탄생되었다. 프랑코 사후 세 번째로 실시된 이 총선에서 사회노동당은 3백50석의 하원의석 중 2백1석을 획득, 36~39년 내전이래 계속되어온 프랑코 시대는 사실상 완전히 청산되었다. 이 선거는 43년간 지속된 극우보수세력의 종언과 스페인 민주주의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국제적 관심을 끌었다.
  • 중국 새 헌법 채택
    중국 새 헌법 채택
    중국은 9월 제12기 전국대표회의에서 개인수배를 불법화한 새黨章(당헌)을 채택했으며 또 11월의 제5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5회의에서 모택동사상보다 현대화노선을 중시하는 새헌법을 통과시켰다. 지난 1월동안 대규모 숙청작업을 벌인 중공은 새黨章과 모택동사상청산, 당우위배제, 법치국가체제 확립을 내용으로하는 신헌법의 채택으로 등소평실용주의 노선이 정착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 국제 불황 歐美 실업
    국제 불황 歐美 실업
    70년대의 오일쇼크로 타격을 받기 시작한 세계경제는 그동안 악순환을 되풀이, 82년도에는 불황이 극에 달했다. 歐美 각 국에는 실업자가 속출해 戰後 최고의 실업률을 기록했으며, 심각한 실업문제는 정치-사회문제로까지 확산됐다. 또 자국경제를 구하기 위해 취해진 보호무역정책은 미국, 서구및 일본사이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침해하기도 했다. 내년의 세계경기는 서서히 회복될지 모르나 그 속도는 완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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