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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10대뉴스

1981년 국내 10대뉴스

  • 전두환 대통령 방미
    전두환 대통령 방미
    전두환대통령은 1981년 1월 28일부터 11일동안 레이건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공식 방문, 정상회담을 통해 주한미군철수계획의 백지화, 한-미 안보협의회의 즉각 재개 등 양국간의 현안을 타결하고 나아가 한-미관계에 새로운 동반자인식을 불어넣었다. 전대통령은 이어 3월 3일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3월 25일 총선거를 거쳐 4월 11일 제11대 국회가 개원함으로써 제5공화국의 출범을 보게 되었다.
  • 윤상군 살해범 검거
    윤상군 살해범 검거
    경서중학생 이윤상군 유괴살해범으로 윤상군의 체육교사 주영형(28)이 사건발생 1년 17일만인 1981년 11월 30일 검거됐다. 주는 노름빚을 갚기 위해 작년 11월 13일 윤상군을 유괴, 영등포의 아파트에 감금시켜 손발을 묶고 입에 반창고를 붙인 후 이불로 덮어 질식사 시켰고, 시체는 경기도 가평군 북한강변에 암장했음이 밝혀졌다. 주를 따르던 두 여고생도 범행을 도와 이들도 공범으로 함께 구속됐다.
  • 경산 열차추돌사고
    경산 열차추돌사고
    1981년 5월 14일 오후 4시 경산군 고사면 경부선 매호건널목 상행선에서 부산발 대구행 보통급 열차가 앞서갔던 서울행 특급열차를 추돌, 승객 52명이 사망하고 2백33명이 부상했다. 철도 사상 최대의 이 참사는 급행열차가 건널목에 버려진 오토바이를 들이받고 현장수습을 위해 후진중 안전신호를 무시하고 과속으로 뒤 따라오던 보통급행에 들이받쳐 일어났다. 열차까지 동원한 현장검증이 실시됐고 황해중 철도청장이 물러났다.
  • 통금 해제 건의안 통과
    통금 해제 건의안 통과
    민정-민한-국민당 등 3당 중진들은 1981년 11월 19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만나 야간통금 해제건의안을 채택키로 합의했다. 이어 국회는 12월 15일 본회의에서 통금해제 건의안을 통과시켰고, 전두환 대통령도 정기국회 폐회 리셉션에 참석, 빠른 시일안에 통금을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37년간 계속된 통금시대의 폐막은 관계부처들의 사전준비작업의 진척만을 남겨놓게 됐다.
  • 60억불 안보경협문제
    60억불 안보경협문제
    새로운 한-일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제5공화국 정부는 일본정부에 대해 60억달러의 정부베이스 차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이 동북아에서 맡고 있는 안보 역할과 그동안 누적된 대일교역에서의 적자등을 감안하여 60억달러의 경협을 요청한 데 대해 스즈끼 내각은 안보에 관련된 경협에는 응할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면서 한-일 외상회담과 각료회담을 통해서도 계속 애매한 태도를 취해 한-일간의 현안으로 남아있다.
  • 정부기구 축소
    정부기구 축소
    정부는 1981년 11월 2일자로 건국이후 최대규모의 기구축소를 단행, 4급(서기관)이상 5백31개 직위를 감축시키고, 행정개혁위원회, 총리기획조정실 등을 폐지했다. 이밖에도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조위원 및 사무국과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을 폐지함으로써 장관급 2개, 차관급 6개, 차관보급 8개의 직위를 비롯하여 국장급 1백42개직등도 없어져 연간 2백억원의 인건비와 1백억원의 부대경비들을 절감시킬수 있게 됐다.
  • 하형사 사건
    하형사 사건
    윤경화씨 피살사건 수사팀의 일원인 용산경찰서 하영웅(40)순경이 윤씨의 예금증서 3장을 빼돌려 경찰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주었다. 하형사의 횡령은 그가 예금증서를 맡긴 사채업자가 증서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은행에 가져갔다가 탄로났다. 이 사건은 국회로까지 비화됐고, 용산경찰서장 등 4명이 직위해제됐다. 수사경찰의 자질 향상 및 수사비 인상 등 개선책이 추진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88년 올림픽 서울 유치
    88년 올림픽 서울 유치
    1988년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가 서울로 확정됐다. 1981년 9월 30일 밤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국제올림픽위원회)제84차 총회의 올림픽개최지 최종결정 비밀투표에서 서울은 예상을 뒤엎고 52표를 얻어 27표밖에 못얻은 일본의 나고야를 25표차로 압승, 스포츠외교의 개가를 올렸다. 이로써 한국은 개발도상국가로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첫번째 국가가 됐다. 지금까지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는 16개국이다.
  • 교육세 신설
    교육세 신설
    콩나물 교실, 2부제 수업 등 열악한 교육환경의 개선이라는 '명분'과 조세부담의 가중이라는 '현실'사이의 진통끝에 교육세가 신설됐다. 교육세 신설 문제는 거의 1년 내내 사회의 쟁점이 되어 찬반이 엇갈렸고 끝내 재산세에 대한 부가징수방안이 철회되는 등 진통을 거듭했었다. 담배 술 이자 및 배당소득 등에 과세되어 내년에 2천3백80억원을 징수하는 등 5년동안 모두 1조5천억원을 거두게 될 것이다.
  • 박세직 장군 예편
    박세직 장군 예편
    수도경비사령관 박세직 육군소장이 청탁-월권행위와 관련해 1981년 8월 6일 보직해임과 동시에 예편됐다. 박소장의 해임사유는 육사동기생으로부터 선물을 받고 모 국책은행에 50만달러의 융자를 부탁한것을 비롯, 관계장관 청장들에게 사업협조를 청탁하는 본분이탈행위를 한 때문으로 발표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공무원사회의 청탁배격운동의 강력추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 1981년 해외 10대뉴스

  • 폴란드 비상계엄
    폴란드 비상계엄
    공산권 최초의 자유노조가 탄생한지 17개월만인 1981년 12월 13일 폴란드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자유노조 지도자 레흐 바웬사를 비롯 수만명의 노조간부와 반체제 지식인이 체포됐다. 보이체흐 야루젤스키 수상이 이끄는 구국군사 평의회는 강경한 탄압조치로 일단 자유노조를 중심으로 한 실력투쟁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폴란드 국민의 뿌리깊은 항쟁은 계속되고 있고, 파산직전의 경제가 재건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 레이건 피격
    레이건 피격
    로널드 레이건 미대통령이 1981년 3월 30일 워싱턴의 힐튼 호텔을 나서던 중 피격, 부상했다. '미국 제1주의'부활을 내건 그의 피격소식은 자유세계에 깊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은 70세의 노령답지 않게 건강을 회복했다. 무언가 떠들썩한 일을 하여 짝사랑 애인의 관심을 끌어보겠다던 것이 범인 존 힝클리(25)의 범행 동기.
  • 이란 미 인질 석방
    이란 미 인질 석방
    이란 회교 학생들에 의해 억류되었던 52명의 미국 인질들이 4백44일만인 1981년 1월 20일 레이건대통령 취임직후 풀려났다. 카터행정부는 인질구출을 위해 무력구출작전과 경제봉쇄 등을 단행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퇴임직전의 마지막협상에서 성공, 인질들을 돌려받았다. 이란이 인질석방에 동의한 것은 인질들의 이용가치가 없어진데다가 대이라크전에 전념하고 79억달러의 이란 재산을 되돌려 받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 바오로 교황 피격
    바오로 교황 피격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1년 5월 13일 베드로 광장에서 터키출신인 극우테러리스트 아그자의 총격을 받고 부상했다. 아그자는 현장에서 곧바로 체포됐다. 그는 기독교 세계를 저주하는 회교 광신도적 정신상태에서 범행을 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사건은 테러리즘과 황폐한 현대문명에 대한 경종이었다.
  • 우주 왕복선 발사
    우주 왕복선 발사
    인류최초의 우주왕복선 콜럼비아호가 1981년 4월 12일 존 영과 로버트 클리픈의 조종으로 미 케이프카내 베랄기지를 떠나 54시간 21분간 우주에 머물면서 지구주위 궤도비행을 한 후 캘리포니아의 에드워드 공군기지로 귀환했다. 11월 13일 있은 콜럼비아호의 제2차 비행은 '로버트 팔'작동중 일련의 과학적 실험에 성공, 우주산업시대의 개막을 예고했다.
  • 유럽의 반핵운동
    유럽의 반핵운동
    1981년 10월 서구에서는 대대적인 반핵시위가 일어났다. 모두 85만명 이상이 가담한 반핵시위는 지난 30년간 서구에서 벌어졌던 어떠한 시위보다도 그 규모가 컸다. 미-소의 핵 경쟁때문에 서구가 희생될 수 없다는 것이 반핵시위의 이유였다. 미국은 반핵시위가 고조되자 서구에서 전역핵을 모두 철거하자는 이른바 제로옵션(0의선택)을 내놓기도 했다.
  • 사다트 암살
    사다트 암살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1981년 10월 6일 제4차 중동전 발발기념 군퍼레이드 참관도중 암살단의 저격으로 숨졌다. 암살단은 사다트의 친미정책과 이스라엘과의 평화노력에 불만을 가진 회교정통파 신도들이었다. 사다트 사망이후 중동 전역에 한때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았으나 그를 뒤이은 무바라크 신임 대통령과 미국의 신속한 대응조치로 평온이 회복됐다.
  • 석유값 인하
    석유값 인하
    치솟기만 하던 세계 석유값이 금년들어 내리는 이변을 보였다. 한때 품질에 따라서는 배럴당 40달러가 넘었던 유가는 지난 10월의 OPEC(석유수출기구)회의에서 배럴당 32달러로 단일화 되었으며 12월 회의에서는 내년부터 다시 현수준에서 20-70센트 인하키로 결정되었다. 유가 인하는 60년의 OPEC 창설이래 처음있는 일로 경기침체와 절약으로 소비가 현저히 줄어든데다가 소비국들의 비축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당선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당선
    1981년 5월 10일 , 프랑스 대통령 2차 결선투표에서 사회당의 미테랑 후보가 당선, 프랑스 제5공화국 탄생 22년만에 처음으로 좌파정권이 들어섰다. 취임 2백일을 넘긴 미테랑 정부는 예상과는 달리 대외적으로는 대소 강경노선과 친서방정책을 유지하면서 대내적으로는 온건한 개혁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약속했던 경제재건은 부가 빠져나가고 실업이 늘고 있어 아직 미지수.
  • 이란 국내 테러
    이란 국내 테러
    1981년 6월 30일 이란 집권회교공화당(IRP) 당사에서 폭발사고가 발생, 회교혁명세력의 주축이었던 베헤슈티 IRP 당수 겸 대법원장을 비롯, 정부 각료 국회의원 등 7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폭발사고 후 두 달 만인 8월 30일 수상관저에서 또 폭탄이 터져 라자이 대통령과 바호나르 수상이 죽었다. 이어 9월 5일에는 검찰청 본부에서 폭탄이 터져 고두시 혁명검찰총장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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