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20세기의 대표적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1975년 10월 22일 8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토인비는 1889년 4월 14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전형적인 지식계급 집안으로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의사였으며, 어머니는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당시로서는 드문 인텔리 여성이었다.

그와 이름이 같은 경제학자 아놀드 토인비도 그의 삼촌이다. 토인비의 일생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은 어려서부터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준 그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그를 13세에 윈체스터 기숙학교로 보냈고, 그는 그곳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완벽하게 배워, 시를 지을 정도였다.

옥스퍼드의 밸리올대에서 고대사를 공부한 토인비는 졸업후 벨리올대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그리스와 로마여행을 떠났다. 1년간에 걸친 여행은 흥분과 감격의 연속이었다. 그리스 여행과 1차 대전으로 현대사에 눈을 뜬 토인비는 1915년 학교를 떠나 외무성 정보부에서 터키관계의 일에 종사했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는 영국 대표단의 중동지역 전문위원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맨체스터 가디언지 특파원으로 그리스를 다시 여행하고, 런던대학 킹스컬리지에서 비잔틴 및 현대 그리스어를 강의한 토인비는 1925년부터 1955년까지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에서 역사학과 국제문제를 연구했다.

그의 역저 ‘역사의 연구’는 30여년동안 몸담았던 이 연구소 시절의 산물이다. 전 12권으로 이루어진 ‘역사의 연구’는 1934년 1, 2, 3권이 나왔으며 4, 5, 6권은 5년 후인 1939년에, 7, 8, 9, 10권은 다시 그로부터 15년 후인 1954년에 출판됐다. 지도와 지명사전인 11권과 자신에 대한 비판을 담은 12권 ‘재고’는 그가 연구소를 떠난 후인 1961년에 출판돼 ‘역사의 연구’는 구상에서부터 40여년이 걸린 셈이다. 토인비 이전 역사 기술의 기본단위는 민족국가였지만 토인비는 세계를 국가가 아닌 20여개의 문명들로 구분하고 문명을 유기체로 생각하며 생장 소멸을 연구했다. 그는 이 책에서 문명의 흥망성쇠를 ‘도전과 응전’이라는 타이틀로 분석했다.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이 그의 역사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면, 그의 역사관은 1993년에 출간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에 다시 영향을 주었다. 토인비는 한국을 일본 문명권에 포함시켜 국내의 비난을 받았지만 1972년에 새로 펴낸 ‘역사의 연구’ 축약본에서는 한국 문명을 28개 문명의 한 단위로 설정하기도 했다. 1차대전 이후 서구를 휩쓴 종말론적, 비관적 분위기의 산물인 ‘역사의 연구’에서 토인비의 궁극적인 관심은 현대 서구문명의 앞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