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9일

영국 찰스 왕세자, 카밀라 파커볼스와 재혼

영국 찰스 왕세자, 카밀라 파커볼스와 재혼
영국 윈저시 대강당에서 결혼식을 마친 후 기념 촬영을 가진 찰스 왕세자와 그의 새 신부 카밀라 파커 볼스 콘월 공작부인의 모습.

영국 찰스 왕세자가 2005년 4월 9일(현지시간) 그의 첫사랑 카밀라 파커 볼스와 재혼했다. 이들은 말 많고 탈 많았던 35년간의 로맨스에 종지부를 찍고 합법적 부부가 됐다.

카밀라는 1947년 런던에서 평민의 딸로 태어나 런던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프랑스와 독일에 유학했다. 1970년 윈저성의 폴로 경기에서 찰스와 처음 만나게 됐다. 열렬한 연인이었던 찰스와 카밀라는 1971년 찰스가 해군에 입대하며 멀어졌다. 2년 후인 1973년 카밀라는 찰스의 친구인 앤드루 파커볼스와 결혼해 1975년 아들 톰을, 4년 뒤엔 딸 로라를 낳았다. 찰스도 1981년 11세 연하의 다이애나와 결혼해 1982년 윌리엄 왕자, 3년 뒤 해리 왕자를 낳았다. 그러나 찰스와 카밀라는 과거를 잊지 못하고 다이애나와 삼각관계로 이어졌다.

1992년 내연관계를 암시하는 대화 테이프가 유출됐고, 이런 삼각관계는 결국 파탄을 낳았다. 1995년 카밀라가 이혼한 뒤 1996년 찰스와 다이애나가 파경을 맞았다. 1997년에는 다이애나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찰스와 카밀라 커플에 대한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하지만 카밀라는 찰스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여왕마저 결혼을 허락하여 2005년 4월 9일 부부가 됐다.

찰스와 카밀라의 재혼은 언론 취재가 금지된 가운데 찰스와 다이애나비의 두 아들인 윌리엄과 해리 왕자를 비롯, 특별히 초대된 28명의 하객만이 참석했다. 이들은 결혼식에 이어 윈저궁 예배당 세인트 조지 채플로에서 축복 예배를 올렸다.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엘리자베스2세 여왕 내외와 토니 블레어 총리, 유럽 왕실 인사, 외교 사절 등 국내외 귀빈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축복 예배는 사실상의 결혼식이었다.

그 후 이들은 윈저궁 워터루홀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주재 피로연에 참석한 뒤 스코틀랜드 왕실 영지 밸모럴로 10일간의 신혼여행을 떠났다. 카밀라는 이번 결혼으로 ‘콘월 공작부인’이란 직함을 부여받았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왕실 여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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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이라크 바그다드 사실상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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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년 80년전 임시정부 요인 130여명 사진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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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국민 고충처리 위원회 (위원장 김광일) 출범
  • 1993년 청와대 앞길 개방해 관광코스로
  • 1993년 32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국내 첫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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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년 알바니아 첫 비공산계 대통령 살리 베리샤 피선
  • 1991년 신민주연합당(약칭 신민당) 정식 출범
  • 1988년 쿠웨이트 여객기 납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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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년 일본 대외시장개방정책 발표
  • 1983년 해저유물단, 충남 태안군 태안반도 앞 해저에서 1000여점의 자기류 발견
  • 1983년 대학 여름학기 신설
  • 1982년 아르헨티나 10만 예비군에 동원령(포크랜드 관련)
  • 1979년 고리원자력발전 3호-4호 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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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년 네덜란드, 베트남과 국교 수립
  • 1973년 한국 여자탁구 유고 사라예보서 세계 제패
  • 1972년 잔지바르섬에서 키르메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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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2년 일본 여객기 추락 - 37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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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5년 디프테리아균을 발견한 독일 세균학자 뢰플러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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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26년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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