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 21일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별세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별세
1988년 11월 9일 국회5공비리특위의 일해재단 관련 청문회에서 마지막 증인으로 나왔던 정주영씨.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겸 전 명예회장이 2001년 3월 21일 오후 10시 서울중앙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86세였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한 이 구절은 그의 인생관을 잘 축약한 것이다. 정주영씨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국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큰 족적을 남긴 시대의 거목이었다.

그는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6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학교 졸업 후 4차례의 가출로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19세 때 경성(서울)의 쌀가게 ‘복흥상회’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특유의 근면·성실로 신뢰를 얻고 마침내 손수 가게를 인수해 1938년 ‘경일상회’를 개업하면서 자수성가의 꿈을 이루었다. 광복 후 1년이 지난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운영하던 그가 건설업의 잠재력에 눈을 뜨고 ‘현대토건사’(현대건설의 전신)를 설립한 것은 1947년. 그는 곧바로 발발한 6·25 동란으로 인한 전후복구사업에 참여, 한국 경제계의 전면에 등장했다.

현대건설은 이후 다리·도로·부두시설 등 전후복구사업을 도맡아 수행하면서 국내 건설업계 1위로 올라섰고, 해외건설시장 진출이라는 모험을 다시 단행한다. 창조적 도전의식, 불굴의 개척정신, 강인한 추진력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공사, 현대조선소 신화, 포니엑셀 신화 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을 신흥공업국 대열에 올려 놓는 데 일조했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주역 중 한 사람이었다. ‘전후복구사업→공업입국→중화학공업화→첨단산업화’로 이어지는 우리 경제사의 주요 물줄기를 민간부문에서 이끌어 온 주역이었다.

말년에 그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대북사업이었다. 1989년 민간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그는 이후 머지않아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신념을 피력해왔다. 첫 방북 9년 만인 1998년 6월 16일 그는 판문점 ‘소떼몰이’ 방북으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평생 동안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것은 그날 할 일이 즐거워서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던 그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했다. 기력이 쇠해 자식간 경영권 분쟁인 ‘왕자의 난’(2000년 3월)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고, 2000년 8월 이후에는 병원에서 요양생활을 해야 할 정도로 기력이 뚝 떨어졌다.

그 해, 오늘 무슨일이… 총41

  • 2011년 신정아 자서전 출간…거센 후폭풍 예고
  • 2010년 미국 하원, 건강보험개혁 법안 통과
  • 2003년 19세 임동혁군, ‘세계 피아니스트 100인’에 초청
  • 2003년 ‘이라크 침략 규탄, 한국군 파병반대’ 교수 800인 선언
  •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방한(-23일)
  • 2001년 새 인류조상 ‘케니안트로푸흐 플라티오프스’ 케냐서 발견
  • 1998년 소련 최초의 최고 수석 발레리나 울라노바 사망
  • 1997년 한보건설 최종 부도 처리
  • 1996년 영종도 신공항 이름, 인천국제공항으로 확정
  • 1996년 한국 올림픽 축구팀,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예선에서 중국과 싸워 4강 진출
  • 1995년 김철수 전상공부장관 WTO(세계무역기구) 사무차장에 선출
  • 1991년 말라카해협 동북부공해상에서 원양참치어선702호 베트남 해적선에 피랍
  • 1990년 한국-나미비아 국교 수립
  • 1990년 아프리카 최후의 식민지 나미비아, 남아공으로부터 독립
  • 1990년 스포츠조선 창간
  • 1983년 일본-중공 여객기 한국비행정보구역(FIR)통과 시험비행
  • 1982년 진주에 첫 가구장식박물관 개관
  • 1981년 금융자율화방안 마련
  • 1980년 한국-프랑스-가봉, 가봉의 우라늄광 공동탐사계약 체결
  • 1978년 장징궈, 자유중국 총통에 선출
  • 1973년 남북적십자 5차 본회담 (~23일 평양)
  • 1967년 현충사, 사적 115호 지정
  • 1964년 인도 종교폭동 확대
  • 1963년 헝가리 대사면 단행
  • 1963년 한국-르완다 국교 수립
  • 1963년 케네디 미국대통령, 기자회견서 한국에 민주적정부 복귀를 열망
  • 1962년 소련-미국의 우주공동개발 제의에 동의
  • 1962년 국립극장 전용공연장 개관
  • 1957년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피고 이덕신, 최훈, 김상붕 사형언도
  • 1954년 국군 제1군 발족
  • 1954년 한국, 표준시 135도에서 127.5로 변경
  • 1950년 조용필 출생
  • 1943년 소설가 현진건 사망
  • 1902년 경부철도청부회사 설립
  • 1884년 프랑스, 노동조합법 공포
  • 1829년 스페인에 대지진, 6천여명 사망
  • 1806년 멕시코의 대통령(1861-72 재임) 후아레스 출생
  • 1804년 나폴레옹 법전 공포
  • 1762년 프랑스의 천문학자 라카유 사망
  • 1685년 독일 작곡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 출생
  • 1543년 코페르니쿠스, 지동설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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